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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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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상경하면서 처음 구했던 반지하 월세방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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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들은 아마 앞으로 몇 년 뒤에도 여전히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을 거야. 솔직히 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없는 거지. 걔들이 원하는 건 내가 "와, 무슨 그럴 쳐 죽일 년이 다 있대? 회사 진짜 거지 같다, 한국 왜 이렇게 후지냐." 라며 공감해 주는 거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냐. 근본적인 해결책은 힘이 들고, 실행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니까. 회사 상사에게 "이건 잘못됐다."라고, 시어머니에게 "그건 싫다."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가 무서운 거야. 걔들한테는 지금의 생활이 주는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이 너무나 소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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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춥지 않을 거예요. "

나는 동화책의 마지막 문장을 입 밖에 내어 말했어. 내 목소리를 들은 지명이 몸을 잠시 뒤척이며 신음하더라.

친구 펭귄들이 파블로한테 얼마나 많이 얘기했을까? 그냥 참고 살라고 말이야.
다들 그렇게 산다고. 파블로한테는 헤어지기 어려운 피붙이나 애인은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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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맙고 미안하다는 이유로 내가 네 옆에 있을 수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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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제목부터 대놓고 말한다. 내가 사는 우리나라가 싫다고.

이 책은 주인공인 계나가 한국이 왜 싫은지에 대해 납득시킨다. 주인공인 계나는 서울 출신이지만 상대적으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위에는 아르바이트만 하며 30이 넘은 나이를 지내오는 언니가 있고 밑으로는 컴퓨터 게임만 하는 백수 동생이 있으며 세 자매 중 직장생활이라는 걸 하는 사람은 계나 자신밖에 없다. 그런 계나에게 부모님은 오히려 재개발이 된다는 동네 소식에 부족한 돈을 더 보태달라고 이야기한다. 너희 언니는 이래서... 너희 동생은 이래서... 사회에서의 불공평함은 가정에서 까지 이어진다. 

 

한국이 싫은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부비부비하며 매일 불쾌함을 느껴야 하고 8시간의 업무시간도 모자라 야근까지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200도 안 되는 나의 최저시급과 더불어 내가 사는 집에는 듣도 보도 못한 다양한 종류의 벌레들이 모여 살기 때문이다. 내가 힘들게 일해도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외로운 도시 서울에서는 나조차도 나를 돌보지 못한다. 

 

결국 계나는 호주에서의 영주권을 따내게 되지만 계나가 호주에서 행복할지는 모르겠다. 한국에 두고 온 가족과 옛 연인 때문일까 내가 태어난 곳이라는 안정감 때문일까 그저 상황에 대해 욕만 하는 친구들 때문일까 북적북적한 출퇴근 길 때문일까......

 

상황에 대해 스스로 행복해질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한 계나가 부러워지기도 했다. 고맙고 미안하다는 이유로 네 곁에 있을 수 없다고 말 한 부분이 매우 슬프기도 했지만 동시에 후련했다. 

나도 나의 삶을 찾아 가족과 친구들의 곁을 떠나 낯선 도시로 왔다. 군자동의 허름한 반지하방에서의 서울생활의 시작은 주인집 할아버지와 허름한 세탁기를 놓고 매번 말싸움을 해야 했고 매일 울었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내가 나의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어떤 사람은 내가 있는 곳에서 행복하지 않다면 다른 곳에 가서도 행복할 수 없다는데 아마 그 이유에서 인지 나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계나가 한국이 싫다고 말한 이유와 상충된다. 

불공평한 사회, 북적거리는 지하철과 버스 그리고 다양하고 각자의 상황 속에서 말로써 나를 외롭게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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